밀라노비치 선생이 흥미로운 아티클을 올리셨다. 흔히 틀린 예측으로 자주 인용되는 케인즈의 우리 후손의 경제적 가능성에서 생각해볼 다른 대목이다.

노동이 줄어든 미래

선생이 언급해서 새삼 깨달았지만 이 주장을 훨씬 더 웅변적으로 그리고 유토피아를 바라보며 했던 사람은 맑스다. 맑스의 「독일 이데올로기」의 한구절이다.

분업이 시작되자마자 각자에게는 배타적인 활동의 영역이 할당되며, 이것이 그에게 강요되어 그는 여기서 벗어날 수 없게 된다. 그는 사냥꾼, 어부, 목동 또는 비판적 비평가이며, 자신의 생계 수단을 잃지 않으려면 계속해서 그렇게 머물러 있어야만 한다.

반면에 각자가 하나의 배타적인 활동 영역만을 갖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어떤 분야에서도 발전할 수 있는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사회가 전반적 생산을 조절한다. 그로 인해 나는 마음 내키는 대로 오늘은 이 일, 내일은 저 일을 할 수 있게 된다. 아침에는 사냥하고, 오후에는 낚시하고, 저녁에는 가축을 돌보고, 저녁 식사 후에는 비판을 하되 사냥꾼, 어부, 목동 또는 비평가가 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아티클에서 케인즈 역시 비슷한 전망을 내리고 있다. 케인즈가 약 100년 후라고 전망했으니 대략 2030년(아티클은 1930년에 쓰여졌다) 정도부터다! 케인즈의 전망은 대략 다음과 같다.

  • 향후 100년 동안 선진국의 1인당 평균 소득은 4배~8배 증가
  • 물질적 풍요가 노동의 필요성을 낮추어 주당 노동 시간은 15시간
  • 인류가 마침내 경제적 문제를 해결했을 때 이 모든 추가적인 자유 시간과 여가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의 딜레마

첫번째 예측은 정확히 맞았다. 두번째 예측은 ‘대가도 틀릴 수 있다’의 사례로 언급되고는 하지만, 2020년대 불어닥친 AI라는 변수로 인해 아직 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두번째에 막혀서 거의 생각하지 못한 대목은 마지막이다.

풍요 시대의 덕목

케인즈는 이런 풍요의 시대에 가장 중요한 덕목은 현재를 즐기는 태도라고 봤다. 케인즈에 따르면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네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낮은 인구 증가율, 전쟁의 부재, 기술적 진보, 그리고 저축과 자본축적이다.

특히 저축과 자본축적의 경우 현재에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을 참고 미래를 기약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저축과 투자가 바로 그렇다. 밀라노비치 선생을 인용한다.

경제적으로 진보한 사회는 자원을 가진 충분한 수의 사람들이 이러한 만족 지연의 원칙을 내면화할 때만 가능하다. 엄밀히 말해 이는 인간에게 이질적인 것이다. 인간은 좋은 커피든, 아름다운 신발이든, 멋진 휴가든 좋은 것을 지금 당장 원하며, 은행 계좌에 쌓인 추상적인 돈의 형태가 아니라 그 자체로 누리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지금 즐거움을 찾는 쾌락주의는 정상적이고 건강한 인간의 특성이다. 반면 ‘금욕’, 즉 미래의 즐거움을 추상적으로 향유하는 것은 기이하고 어떤 면에서는 ‘병적인’ 관습이며, 마르크스는 이를 ‘추상적 쾌락주의’라 불렀다. 활동의 결실이 미래에 있는 활동에 매진하기보다 활동 그 자체를 즐기려는 자연스러운 경향은 미래의 즐거움을 과소평가하지 않는 이들에 의해 뒤집혔으며, 우리가 경제 성장을 이룬 것은 바로 그들 덕분이다.

케인즈는 이런 흔치 않은 능력을 가능하게 한 ‘우회’가 일신론적인 종교라고 본다.

우리 종교의 심장과 본질에 불멸의 약속을 심어 넣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민족이, 복리 원칙을 위해서도 가장 큰 역할을 수행했으며 인간의 제도 중 이토록 목적 지향적인 제도를 특히 사랑한다는 사실은 아마도 우연이 아닐 것이다.

이를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라고 칭하는데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가 여기 해당한다. 이들 종교는 지상의 즐거움을 스스로 거부하는 자들에게 미래의 쾌락을 약속한다. 종교적인 자기부정과 구원의 약속이 경제적 만족의 이연과 미래의 안락과 상호 호응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경제적 문제”의 시대에 좋은 덕목이었다면 반대로 “풍요의 시대”가 되면 이러한 덕목은 오히려 풍요를 누리는 데 방해가 된다. 풍요의 세상에서는 즐거움을 연기할 필요가 없고 저축과 투자도 불필요하다. 따라서 일신교는 사회의 방향에 기능적이지 않다.

오늘날 이에 가장 적합한 사회?

저축을 하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현재를 즐긴다는 점에서는 아마도 미국 사회일 것이다. 하지만 욕심이 흘러넘치는 사회 그리고 기독교에 열광하는 사회라는 점에서 미국은 풍요의 시대에 걸맞지 않기도 하다. 격변기에 변화란 사회적으로 경제, 문화 그리고 사람들의 생활사까지 총체적으로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닐까? 잡생각은 마무리하지 않고 여기서 끝!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