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관, “마약 하는 마음, 마약 파는 사회”
넋두리
책은 “1부 마약하는 사람”, “2부 마약 파는 사회”로 구성되어 있다. 1부가 마약 자체의 분류, 효과 그리고 마약하는 개별자에 대해서 다루고, 2부는 마약의 정치경제학(?), 역사 등을 다루고 있다.
1부는 의학자로서 저자의 전문 지식이 돋보이는 부분이 있다. 마약의 분류, 작용 기제 등에 대한 설명이 다른 대중서들보다 명쾌하다. 2부는 이래저래 다른 자료들을 발췌해서 쓴 느낌이 세게 들더라. ‘마약 왕국’ 챕터에 해당하는 부분은 넷플릭스 시리즈 “나르코스” 그리고 “돕식”(디즈니+), “페인킬러”(디즈니+) 등을 한 번 보는 게 훨씬 나을 듯 싶다. 한국 마약 풍경의 역사에 관해서는 저자가 참고한 서적을 직접 보는 게 나을 것 같다. 전체적인 스케치라는 기준에서 보면, 책의 서술이 나쁘지는 않다.
내용을 다루다가 저자가 너무 심취하는 순간이 종종 발견된다. 심취하면 말이 많아지고 길을 잃기 십상이다. 이런 게 나는 좀 거슬리더라. 이또한 어쩌면 취향이니 일단 넘어가자.
챙길 대목들
신경전달물질
마약은 신경전달물질을 통해서 작용한다. 신경전달물질이 시냅스의 수용체에 달라붙어 효과를 낸다. 저자가 제시한 핵심 신경전달물질을 살펴보자.
아세틸콜린: 가장 기본적인 물질이다. 전화벨과 같다고 한다. 뭘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신호 역할을 한다는 의미로 이해하면 될까? “이 아세틸콜린이 줄어들면 뇌의 모든 기능, 그 중에서도 지식과 정보를 받아들여 저장하고 판단하는 인지 기능에 이상이 생긴다. 바로 알츠하이머 치매다.”
노르에피네프린: “시계의 알람처럼 긴장과 흥분을 일으켜 혈압을 상승시키기 떄문에 출혈 등으로 혈압이 떨어진 쇼크 환자에게 치료제로 쓴다.”
도파민: “클럽 DJ가 들려주는 음악같이 운동기능과 함께 즐거움과 쾌락을 준다. 이 도파민을 분비하는 신경세포에 이상에 생기면 운동기능 이상으로 몸을 떨거나 강직이 온다. 바로 파킨슨 병이다.”
세로토닌: “절의 목탁 소리처럼 평온함과 행복감을 주는데 이것이 부족하면 우울증이 생긴다.”
엔도르핀: “우리 몸에는 몸이 만든 모르핀(endogenous morphine), 즉 엔도르핀이 극소량이지만 존재한다. 이 엔도르핀은 평소에는 전혀 분비되지 않다가 극한의 상황에서만 분비되기에 어지간히 아프거나 다쳐서는 나오지 않는다.”
마약 분류
잘 분류해 놓은 그림이다! 코카인/암페타민 계열의 약과 마리화나/모르핀 계열의 약은 각각 업과 다운 계열이다. 그리고 모르핀에서 파생된 헤로인, 마약성 진통제, 펜타닐 등이 모두 다운 계열에 속한다. 알콜이 다운 계열에 속하는 건 약간 의아하기도 하다. 술을 먹으면 자는 사람도 있지만 몹시 흥분하는 부류도 많기 때문이다.
저자는 다운 계열의 약이 막연히 ’안전’할 것이라는 짐작은 위험하다고 강조한다. 대마에 대해서 이런 종류의 이야기를 듣고는 한다. 대마의 경우 자극이 세지 않아서 중독될 가능성이 낮다고.
저자에 따르면 오히려 반대가 진실에 가까울 수 있다. 업 계열의 약들이 에너지 소모가 많다. 따라서 효과의 지속시간이 짧다. 업 계열 약에는 복용과 복용 사이의 필연적인 간격이 존재한다. 이에 반해 다운 계열의 약은 그런 식의 주기가 없다. 미끄러지듯이 중독에 빠져들기에는 다운 계열이 오히려 중독되기에 보다 쉬울 수 있다. 마약성 진통제 위기(opioid crisis)에서 옥시콘틴 같은 약에 사람들이 쉽게 빠져들게 된 이유를 여기서 짐작할 수 있다.
흥미로운 대목들
자연에서 인간을 통해 발견된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미약을 제약사가 개발했다. 코카인은 원래 ’국소 마취제’로 1885년 머크사가, ’모르핀’은 전쟁 부상병의 고통을 덜기 위한 목적으로 1898년 바이어사가 개발한 제품이다. 독일의 페르비틴, 일본의 필로폰 그리고 영국의 벤제드린은 모두 2차 대전 중 각 나라가 전후방의 전투력을 높일 목적으로 활용했다.
북한산 필로폰이 높은 순도를 자랑한다는 점을 처음 알았다. 국가에서 정책적(?)으로 제조해서 그렇다고 한다. 북한에서 “빙두”(여기서 두는 독의 한자 발음이다)라고 부르는 이 마약이 탈북자의 네트워크를 통해서 남한으로 전해지지 않았을까 상상해 보았다. 이에 관한 연구가 있는지는 아직 찾아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