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 몰릭의 아티클 을 읽다가 엉뚱하게 쓰레기 통 이론에 꽂혀 버렸다. 간단히 소화해보자.
조직의 의사결정은 흔히 다음과 같은 과정으로 설명된다.
문제 발견 → 대안 탐색 → 대안 평가 → 최적 대안 선택
하지만 실제 조직에서 의사결정을 경험해 보면 이와 상당히 다른 경우가 많다.
어떤 해결책은 문제가 생기기도 전에 이미 존재한다.
회의에 누가 참석했느냐에 따라 결론이 달라진다.
결정이 먼저 내려지고 그 결정을 정당화하는 문제가 나중에 등장하기도 한다.
이러한 현실의 조직 의사결정을 설명하는 이론이 **Garbage Can Theory(쓰레기통 모형)**다.
Garbage Can Model의 등장
Garbage Can Model은 Michael D. Cohen, James G. March, Johan P. Olsen이 1972년 발표한 논문 **「A Garbage Can Model of Organizational Choice」**에서 제시됐다.
이들은 특히 대학과 같은 조직의 의사결정 과정을 관찰하면서, 조직이 항상 명확한 목표와 일관된 선호를 가지고 합리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
이들이 관심을 가진 조직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 조직이 무엇을 원하는지 명확하지 않다.
- 어떤 행동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정확히 알기 어렵다.
-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사람이 계속 바뀐다.
Cohen, March, Olsen은 이런 조직을 Organized Anarchy, 즉 조직화된 무정부 상태라고 불렀다.
합리적 의사결정 모형과 무엇이 다른가
전통적인 합리적 의사결정 모형에서는 문제가 출발점이다.
문제가 발생하면 해결책을 탐색하고, 여러 대안을 비교한 뒤 가장 적절한 해결책을 선택한다.
Problem
↓
Search for Solutions
↓
Evaluate
Garbage Can Model은 이런 순서 자체를 의심한다. 현실의 조직에서는 문제와 해결책이 반드시 순서대로 등장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조직 내부에 이미 다음과 같은 아이디어가 존재할 수 있다.
“AI를 활용해야 한다.”
그런데 아직 AI가 해결해야 할 구체적인 문제는 정해져 있지 않다. 그러다 비용 절감, 고객 서비스 개선, 개발 생산성 향상 등의 문제가 등장하면 기존의 AI라는 해결책이 그 문제와 결합한다.
즉, Problem → Solution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Solution → Problem 도 존재한다. 때로는 해결책이 자신에게 적합한 문제를 찾아다닌다. 이것이 Garbage Can Model의 중요한 통찰 중 하나다.
네 가지 독립적인 흐름
Garbage Can Model에서는 조직 안에서 네 가지 흐름(stream)이 상당 부분 독립적으로 움직인다고 본다.
| Stream | 의미 | 예 |
|---|---|---|
| Problems | 조직이 해결해야 한다고 인식하는 문제 | 매출 하락, 조직 갈등, 비용 증가 |
| Solutions | 조직 내부에 존재하는 해결책과 아이디어 | AI 도입, 조직개편, 신규 시스템 |
| Participants |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사람 | CEO, 임원, 팀장, 전문가 |
| Choice Opportunities | 실제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기회 | 경영회의, 예산편성, 조직개편 |
핵심은 이 네 가지가 하나의 논리적인 프로세스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각각 독립적으로 조직 안을 돌아다니다가 특정한 시점에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 만남이 의사결정을 만들어낸다.
왜 하필 ‘Garbage Can’인가
의사결정 기회를 하나의 **쓰레기통(Garbage Can)**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조직 구성원들은 이 쓰레기통 안에 여러 가지를 던진다.
- 누군가는 문제를 던진다.
- 누군가는 해결책을 던진다.
- 누군가는 자신의 관심사를 던진다.
- 어떤 사람은 회의에 참여하고, 어떤 사람은 빠진다.
특정 시점에 쓰레기통 안에 들어 있는 문제, 해결책, 참여자의 조합에 따라 의사결정이 이루어진다. 따라서 조직의 결정이 반드시 가장 중요한 문제에 가장 좋은 해결책을 적용한 결과라고 볼 수는 없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어떤 문제가 어떤 해결책 및 참여자와 언제 만났는가일 수 있다. 이를 **때를 맞춘 결합(temporal coupling)**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Organized Anarchy의 세 가지 특징
Garbage Can Model은 모든 조직이 항상 이렇게 움직인다고 주장하는 이론은 아니다. 특히 다음 세 가지 특성이 강한 조직에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진다.
① Problematic Preferences — 불명확한 선호
조직이 무엇을 원하는지가 명확하지 않다. 전략을 먼저 정하고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의사결정을 하면서 오히려 조직의 목표가 구체화되기도 한다.
즉, 목표 → 의사결정, 뿐 아니라 의사결정 → 목표의 발견이라는 역방향도 가능하다.
② Unclear Technology — 불명확한 인과관계
어떤 행동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조직이 정확히 알지 못한다.조직은 완전한 인과모형을 가지고 행동하기보다는 경험, 시행착오, 과거의 관행에 의존한다. 특히 불확실성이 높은 신사업이나 기술 투자에서 이런 특성이 강하게 나타날 수 있다.
③ Fluid Participation — 유동적인 참여
의사결정 참여자가 고정되어 있지 않다. 같은 문제라도
- 누가 회의에 참석했는가
- 누가 그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가
- 누가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있는가
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의사결정의 결과를 이해하려면 문제와 대안뿐 아니라 그 순간 누가 참여하고 있었는가도 살펴봐야 한다.
의사결정이 곧 문제 해결?
Garbage Can Model의 또 다른 중요한 통찰은 다음과 같다.
조직에서 의사결정이 이루어졌다는 사실과 문제가 해결됐다는 사실은 다르다.
Cohen, March, Olsen은 의사결정의 결과가 서로 다른 방식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설명한다.
Resolution
문제와 해결책이 실제로 연결되어 문제가 해결되는 경우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정상적인 의사결정에 해당한다.
Oversight
문제와 충분히 연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선택이 이루어진다. 즉, 결정은 내려졌지만 실제 문제 해결과의 관계는 약하다.
Flight
문제가 다른 의사결정 기회로 이동하면서 현재의 선택이 가능해지는 경우다. 문제가 해결된 것이 아니라 사실상 문제가 다른 곳으로 이동한 것에 가깝다.
실제 기업에서 생각해 보기
예를 들어 어느 기업이 대규모 조직개편을 한다고 생각해 보자. 공식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이유들이 제시될 수 있다.
- 의사결정 속도 향상
- 조직 효율성 개선
- 새로운 전략 실행
- 비용 절감
- 책임경영 강화
합리적 의사결정 관점에서는 먼저 이러한 문제가 존재했고, 여러 대안을 검토한 결과 조직개편이라는 해결책을 선택했다고 해석한다.
문제
↓
대안 탐색
↓
조직개편 선택
하지만 Garbage Can 관점에서는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 이미 조직개편이라는 solution이 존재하고 있었을 수 있다. 여기에
- 새로운 CEO의 취임
- 특정 임원의 문제 제기
- 실적 악화
- 연말 인사 시즌
- 새로운 전략 발표
등이 우연히 같은 시점에 결합하면서 조직개편이 실행됐을 수 있다.
문제 ─────────┐
기존 해결책 ──┤
참여자 ──────-─┼──→ 조직개편
인사 시즌 ────┘
따라서 중요한 질문은
“조직개편이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인가?”
뿐만 아니라,
“왜 바로 지금 이 조직개편이 가능해졌는가?”
가 된다.
Garbage Can Theory는 What이나 Why뿐 아니라 When을 조직 의사결정의 중요한 변수로 끌어들인다.
8. 전략회의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Garbage Can Model은 기업의 전략회의를 관찰할 때도 유용하다. 예를 들어 회의에서 다음과 같은 현상이 반복될 수 있다.
“왜 AI를 도입해야 하는가?”
각 부서가 서로 다른 문제를 제시한다.
- 개발 조직: 생산성
- 사업 조직: 비용 절감
- 마케팅 조직: 고객 분석
- 경영진: 새로운 성장동력
흥미로운 것은 AI라는 solution은 이미 존재하는데 그것이 해결할 problem이 계속 바뀐다는 것이다. 이 경우 AI 도입이라는 의사결정을 단순히 특정 문제에 대한 최적해로 이해하면 실제 조직의 의사결정 과정을 놓칠 수 있다.
오히려
이미 존재하던 solution이 여러 problem 가운데 자신을 정당화할 수 있는 problem과 결합한 과정
으로 보는 것이 더 설명력이 있을 수 있다.
9. Garbage Can Theory가 주는 경영적 시사점
이 이론을 단순히
“조직은 비합리적이다.”
라는 주장으로 이해하면 핵심을 놓치게 된다.
Garbage Can Theory가 제기하는 더 흥미로운 질문은 조직의 의사결정 구조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다.
첫째, Problem과 Solution을 구분해야 한다
회의에서 누군가 해결책을 제안했다면 먼저 물어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해결하려는 문제는 정확히 무엇인가?”
Problem과 Solution을 명시적으로 분리하는 것만으로도 solution이 problem을 만들어내는 현상을 상당 부분 발견할 수 있다.
둘째, 누가 참여했는지를 봐야 한다
의사결정의 품질은 대안의 품질뿐 아니라 participation structure에 영향을 받는다.
누가 참석했고 누가 빠졌는지가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면 회의체의 구성 자체가 중요한 조직 설계 변수가 된다.
셋째, 의사결정의 타이밍을 봐야 한다
같은 문제와 같은 해결책이 존재해도 어떤 시점에는 결정되고 다른 시점에는 결정되지 않는다.
따라서 중요한 의사결정을 분석할 때는
Why this decision?
뿐 아니라
Why now?
를 물어야 한다.
10. 한 문장으로
Garbage Can Theory의 핵심을 한 문장으로 압축하면 다음과 같다.
조직의 의사결정은 문제에 대한 최적의 해결책을 찾는 과정이라기보다,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문제·해결책·참여자·의사결정 기회가 특정 시점에 결합하면서 만들어지는 과정일 수 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조직에서 흔히 경험하는 이상한 현상들이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왜 해결책이 먼저 정해져 있는가. 왜 같은 문제인데 회의마다 결론이 달라지는가. 왜 오랫동안 방치되던 문제가 갑자기 중요한 전략 과제가 되는가. 왜 조직개편의 이유가 사람마다 다른가.
Garbage Can Theory의 답은 단순하다.
조직의 의사결정은 논리의 산물인 동시에, 구조와 참여 그리고 타이밍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Reference
Cohen, M. D., March, J. G., & Olsen, J. P. (1972). A Garbage Can Model of Organizational Choice. Administrative Science Quarterly, 17(1), 1–25.